파리 교사 참수 테러 발생 후 한 달도 지나지 않았다.
이슬람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무슬림인 나는 내 종교가 평화를 설파한다는 것을 안다. 코란에서 무고한 사람을 죽이거나 테러를 저질러도 좋다는 구절을 찾아서 보여주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1만 달러를 주겠다. 공개적인 제안이고, 유효 기한은 없다. 난 종교 집단인 무슬림은 테러리스트가 아니라는 것도 알고 있다. 내가 실제로 입증한 바 있다. 나는 또한 당신이 무슬림에 의해 살해 당할 가능성보다는 번개에 맞아 죽거나, 소파에 깔려 죽거나, 유아에게 살해 당할 가능성이 더 크다는 것도 실제로 입증했다.
테러리스트들이 유대인이고 프랑스인이라는 이유로 프랑스의 유대인들을 죽이기 시작했을 때 눈물을 흘리지 않은 사람들도 있었다. 이스라엘인들이 팔레스타인인들을 억압했기 때문이었다. 테러리스트들이 군인이고 프랑스인이라는 이유로 프랑스 아랍 군인들을 죽였을 때, 진정 애도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프랑스가 과거 식민주의를 펼쳤다는 핑계였다. 이제 테러리스트들은 모두를 노리고 있다. 축구 팬, 테라스에서 술 한 잔을 즐기는 사람들,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 이제 그들이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그들은 핑계를 찾아냈다. 아주 빨리. 지나치게 빨리. 이번에는 그들은 우리가 시리아에 개입한 것이 잘못이라고 말하고 있다.
진정한 해결은 강대국의 이권 다툼의 결과로 빚어진 시리아 내전의 심각성에 이제라도 책임의식을 갖고 "우리 모두는 시리아인"이라는 진심어린 연대감을 표현하는 것에 있어 보인다. 하지만 빠리 테러 이후의 정국은 시리아 난민들에게 더욱 어려운 양상으로 전개될 것으로 예상된다. 난민이 테러리스트로 둔갑할 수도 있다는 교란적 이야기가 난무하는 상황 속에서 프랑스 난민정책의 기조가 한층 강경하게 전환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러시아, 이란, 심지어 시리아를 적대시하는 것을 중단해야 한다. 우리가 그들의 행동에 찬성하지 않는다 해도, 그들은 이번 싸움에 있어서는 동맹이기 때문이다. 2차 세계대전 때 문명 세력이 손을 잡았던 것처럼 모든 나라들이 힘을 합쳐야 한다. 스탈린이 없었다면 루즈벨트와 처칠은 히틀러를 상대로 이기지 못했을 것이다.
프랑스의 수도 파리에서 일어난 동시다발 테러로 많은 사람이 죽었다. 멀리 떨어진 곳의 일이지만 마음이 심란해지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그런데 이 심란한 마음은 파리가 겪는 상황 때문만은 아니다. 많은 이들이 겪는 공포와 충격에 충분히 공감한다. 많은 사람들이 파리를 위해 공분하고 해시태그를 공유하는 것도 이해한다. 그럼에도 뭔가 불편한 부분이 있다. 엊그제 레바논의 베이루트에서는 폭탄테러로 43명이 목숨을 잃었는데 그에 대한 세계인들의 분노라든가 해시태그 같은 것을 보지는 못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아무 소용없이 사진들을 끊임없이 들어다본다. 사냥당하는 동물처럼 공격당한 사람들의 고통과 혼란, 그리고 공포. 그리고 학살로부터 간신히 살아남은 목격자들의 쉰 목소리를 듣는다. 우리는 새로운 차원의 이번 테러를 보며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진다. 이번 테러는 특정 종교인, 경찰, 군인, 유대인 등을 목표로 삼은 게 아니었다. 11월의 한 밤에 음악과 행복을 즐기려던 젊은이들에게 총탄을 퍼부었다. 이것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시리아와 수많은 국가들로부터 난민들이 안전을 찾아 쏟아져 들어오는 이때 프랑스는 국경을 폐쇄할 수 있을까? 그리고, 그들은 프랑스에서 안전을 찾을 수 있을까? 만약 프랑스가 '쉬운 타깃'이라면, 이 새로운 전쟁에서 스스로를 어떻게 보호할 수 있을까? 이상주의자들을 끌어들이는 열린 거리와 카페와 공원으로 가득한 파리는 이제 폭력에 위협받고 있다. 이런 질문들에 대한 대답은 쉬운 동시에 어렵다. 공포는 파리를 상징하던 편안함과 용맹함과 삶을 대신할 것이다. 많은 것이 바뀔 것이다. 그러나 그런 공포가 이 도시를 빛나게 하는 영원한 불꽃을 죽일 만큼 충분히 강력하지는 않을 것이다.